미중 패권경쟁으로 동북아 불안…철저한 대비로 국내외 변수 줄여야

임진왜란 9년 전인 1583년 ‘10만 대군 양성’을 주장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 그는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사적 제525호 ‘파주 이이 유적’의 가족묘역에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등과 함께 묻혀 있다.

특이한 것은 율곡의 부인 곡산(谷山) 노씨(盧氏)의 묘가 율곡 묘보다 위에 있다. 그리고 율곡의 부모 묘는 율곡의 묘보다 아래에 있다. 역장(逆葬·조상의 묘 윗자리에 자손의 묘를 씀)이다. 조선시대 중기까지 풍수지리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역장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씨 부인이 율곡보다 위에 묻힌 데는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율곡은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8년 전인 1584년 사망했다. 노씨는 관례에 따라 파주 율곡리 본가 제실에 남편의 위패를 모셨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은 율곡리로 쳐들어왔다. 율곡의 위패를 없애기 위해서다. 이에 노씨는 왜군들이 노린 것이 바로 남편의 위패라는 것을 직감하고 위패를 가슴에 안고 남편의 묘지까지 뛰었다. 남편의 묘에 위패를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노씨는 남편의 묘 바로 위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위패를 가슴에 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이 끝나고 흩어진 후손들이 율곡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노씨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저기 찾다가 가족묘지의 율곡 묘 바로 위에서 두 구의 유골을 발견했다. 곡산 노씨와 몸종의 유골이었다. 노씨의 목뼈에는 칼자국이 선명했다. 그래서 후손들은 유골이 있던 자리인 율곡의 묘 위에 노씨를 묻었다. 묘지 비석에도 ‘文成公栗谷李先生之墓(문성공율곡이선생지묘)/貞敬夫人谷山盧氏墓 後在(정경부인곡산노씨묘 후재)’라고 기록돼 있다.

왜군은 왜 율곡의 위패를 없애려고 했던가. ‘10만 대군 양성’을 주장한 율곡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위패를 없애야 ‘율곡의 혼’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조선에서 ‘10만 대군 양성’이란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율곡의 혼’을 없애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율곡의 ‘10만 대군 양성’은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남북제승대책(南北制勝對策)’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순신 장군도 ‘남북제승대책’을 읽고 수군을 양성한 것으로 보인다. 1519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송천은 율곡과 함께 선조 때 ‘팔문장(八文章)’의 한사람으로 꼽혔으며, 뛰어난 전략가였다. ‘남북제승대책’은 송천이 나이 38세 때 쓴 두 번째 장원급제 답안지의 주요 내용이다. 그 때가 바로 임진왜란 36년 전인 1556년. 율곡의 ‘10만 대군 양성’보다 27년이 빠르다. ‘남북제승대책’은 ‘남쪽 왜구와 북쪽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자세한 내용은 양성현의 ‘그길, 걷다보면’을 참조).

북쪽 여진족 대책 : 긴 강둑을 이용해 육진(六鎭)을 설치, 국경을 튼튼히 하고 항복한 온 호인(胡人)을 군자의 도(道)로 다스리고 그들을 울타리 삼아 그들의 힘으로 조선을 지킨다. 성과 요새를 개수하고 기계를 정비하며 군대와 말을 기르고, 변방의 백성들이 생업을 즐기게 하여 주도권을 조선이 잡아가면 저들은 점차 없어질 것이다.
남쪽 왜구 대책 : 왜구가 조선 땅에 상륙하게 되면 칼 숲에 에워싸여 백성들의 피해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왜구를 바다에서 막아 단 한명도 조선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훌륭한 장수를 선발해 장병을 훈련시키고 남쪽 섬에 있는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 대비하면 바다에서 왜구를 막을 수 있다. 왜구에 비해 수군이 약하지만 장병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혼신을 다해 훈련하고 빈틈없이 계획을 세워 대비하며, 수군은 바다를 다스리고 육군은 수성을 엄밀히 하고 육지와 바다에서 서로 기각을 세워 호응하며 대비한다면 승리는 조선에게 있다.

‘그길, 걷다보면’에 따르면, 송천의 제자 아들 사돈 사위 외사촌 외손자 등 30여명이 이른바 ‘양응정 사단’을 결성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했다. 탄금대 전투의 신립(申砬)장군, 진주성전투의 최경회(崔慶會)장군, 옥포해전의 정운(鄭運)장군 등이 송천의 제자이며, 송강(松江)정철(鄭澈) 옥봉(玉峰)백광훈(白光勳) 죽천(竹川)박광전(朴光前) 고죽(孤竹)최경창(崔慶昌)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석학들도 제자들이다.

송천의 ‘남북제승대책’은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러시아 일보에 대해 항상 안보태세를 굳건히 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전개한 독도방어훈련은 매우 시의 적절했다고 본다. ‘동해 영토수호훈련’이란 명칭도 바람직하다. 독도 영유권 수호 의지를 확고히 하고,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같은 사건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으로 동북아시아 정세가 극도로 불안하다. 어느 나라도 믿을 수 없다. 게다가 국내 정세도 어수선하다. 그럴수록 ‘신(新)남북제승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길이 아베의 경제침략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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