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동맹에서 경쟁 관계로 인식해야…협상서 치밀한 전략과 ‘담대한 자세’ 중요

요즘 만나는 정부 고위인사들마다 “미국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너무 심하게 압박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과도한 대북제재 등에 대해 미국의 압박을 성토했다. 금강산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해 미국이 발목을 잡고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의 이런 ‘미국 성토’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국회의원 47명도 지난 15일 장문의 공동성명을 발표,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에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과정에서 미국의 ‘블러핑(엄포)’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송영길 노웅래 민병두 의원 등은 “현재 1조389억원인 방위비분담금을 5배 가량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언급과 언론보도는 심각한 협박”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2019년 현재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몇 명인가, 주한미군 주둔비용은 얼마인가, ‘50억달러(약 6조원) 증액’ 요구의 근거는 무엇인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2017년 주한미군은 2만4189명이며,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한국이 지불한 방위비분담금은 41억4700만달러로 실제 주한미군 유지관리비용 38억5700만달러보다 2억9000만달러(2900억원)가 많았다. 그 결과 주한미군이 지난해 말까지 사용하지 않은 방위비분담금은 무려 1조3310억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빈센트 브룩스(Vincent Keith Brooks) 전 주한미군사령관조차 2016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이 미국에 주둔시키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 국방부의 ‘2019 회계연도 예산 운영유지비 총람’에 따르면, 방위비분담금을 포함한 주한미군의 직접 주둔 비용은 대략 44억~45억달러라고 한다. 미국은 지난 1991년부터 지금까지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마다 입만 열면 ‘50 대 50 균분’을 요구했다. 그리고 한국은 묵묵히 이를 지켰다. 그럼에도 미국은 올해 들어 느닷없이 ‘50억달러 증액’을 요구했다. 사실상 주한미군 주둔 비용 전체를 내라고 협박한 것이다.

사실 주한미군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핵심 자산이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세계전략인 ‘해외주둔군재배치(GPR)’계획에 따라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변화했다. 주한미군은 한국 방위에도 도움이 되지만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이제 미국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역사와 어떤 문화적 배경을 지닌 나라인지, 우리는 언제까지 마냥 끌려 다녀야만 하는지 등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또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미국 역사는 ‘중세(中世)’라는 배경이 없다. 청교도사상과 아메리카 대륙이란 ‘신천지’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백인들은 그들의 모험담이나 인디언과의 전쟁을 아름답게 기록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야만의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저 문학에서 주인공은 신대륙을 개척하는 ‘아메리칸 아담(American Adam)’이었고, ‘개척을 통해 낙원을 찾는 탐구(quest)’가 주제였을 뿐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소설과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가 그런 작품들이다.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지의 ‘변경(frontier)’은 그들의 로망이었다. 서부 개척은 ‘경쟁(competition)’이란 국민성을 낳았다.

그러나 서부 개척이 끝나자 미국은 ‘새로운 변경’을 찾았다. 그 ‘새로운 변경’은 달 탐사와 같은 우주 개척과 서부와 연결돼 있는 아시아태평양이었다.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 전 미국 대통령이 ‘뉴 프런티어(새로운 변경)’를 주창해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역사 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변경’에 해당된다. 아시아태평양이 개척의 대상이자 ‘경쟁’의 상대란 얘기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도 외교도 무역도 ‘경쟁’으로 포장해 정당화한다. 주한미군 주둔 역시 미국의 ‘변경’을 사수하는 군대이며, 한국 중국 일본은 ‘경쟁’의 상대일 뿐이다. ‘경쟁’에서의 승리는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리처럼 그 결과는 언제나 미화된다.

아울러 미국은 ‘변경’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그동안 미국이 북 미회담에서 보여준 억지와 오만도 따지고 보면 이런 ‘변경’ 상실에 대한 우려를 역으로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면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시아태평양의 ‘새로운 변경’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북한이 쉽게 편입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고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미 간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오는 23일부터 이틀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다. 한‧미 간 ‘밀당’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압박 강도는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그들의 국민성인 ‘경쟁’의 심리가 크게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한‧미관계를 동맹이나 혈맹으로 여기지만 미국은 경쟁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부터는 한‧미관계를 경쟁관계로 인식해야 한다. ‘경쟁’에선 이기기 위해선 ‘담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국이 협박하면 ‘갈 테면 가봐’, ‘철수하려면 철수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리 협상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기술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겨 상대를 코너로 몰고 적당한 선에서 이익을 챙기는 잔꾀’를 토대로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려다보면 자칫 협상에서 밀릴 수 있다. ‘경쟁’에선 힘의 우위도 중요하지만 치밀한 전략과 ‘담대한 자세’가 중요하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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