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연기되면서 사실상 정상 개최 불가능
야구 등 프로 활성화로 올림픽 참가 매력 떨어져

프랑스 출신 쿠베르탱 남작의 주창으로 1896년에 처음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낭만주의 운동의 산물이자 서구 정신문화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올림픽 자체는 스포츠 축제이지만 서구인들에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4백년 만에 꽃핀 그리스 문화의 부흥으로 받아들여진다.

근대 올림픽이 처음 치러지던 19세기의 상황을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19세기 초만 해도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를 발판으로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발칸반도를 석권하던 오스만 제국의 신민으로 복속해 있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낭만주의 운동을 타고 혁명의 불길이 유럽 전역을 휩쓸자 이들도 1821년부터 독립혁명에 나섰다.

이들의 독립혁명은 유럽 각국의 낭만주의자들을 자극해 혁명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낭만주의 문학을 선도했던 영국의 유명한 시인 바이런을 비롯해 수많은 낭만주의자들이 그리스의 독립 운동가들과 힘을 합쳐 오스만에 대항해 싸웠고, 결국 그리스는 1832년 독립을 쟁취했다. 이를 기폭제로 이후 발칸반도에서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 많은 민족들이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한다.

그런데 그리스가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함께 싸운 낭만주의자들은 자신들 문화의 뿌리가 고대 그리스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 문화는 르네상스 이후 또 한 번 서구의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게 바로 근대 올림픽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4년마다 올림피아에 모여 벌이던 스포츠 축제를 본 따 근대 올림픽을 창설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각각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서로를 상대로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만큼은 전쟁을 멈추고 한 자리에 모여 기와 예를 겨뤘다. 쿠베르탱은 이를 모방해 세계인들의 축제로 승화시켜 근대 올림픽을 창설했다. 쿠베르탱은 인류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렇게 19세기 말의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 그리스 부흥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올림픽은 서구의 근대적 민족국가 수립과도 연결돼 국가 대결의 장으로 발전하며 초기의 어려움 딛고 20세기 들어 점차 성공했다. 1924년부터는 동계 올림픽이 별도로 개최되면서 동·하계 올림픽이 구분되는 등 확장도 꾀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 세상의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대 올림픽은 전쟁을 멈추고 치러진 반면 근대 올림픽은 전쟁 때문에 여러 차례 중단됐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기로 했던 1916년 하계 올림픽이 취소됐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 도쿄에서 열리기로 했던 1940년 하계 올림픽, 삿포로에서 열리기로 했던 1940년 동계 올림픽, 영국 런던에서 열리기로 했던 1944년 하계 올림픽,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릴 예정인 1944년 동계 올림픽이 취소됐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의 올림픽은 새로운 시련에 직면했다. 올 7~8월에 치르기로 예정돼 있던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돼 내년에 치러지게 됐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인해 그동안 취소냐 연기냐를 놓고 도쿄올림픽 조직위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많은 논의를 했지만 결국 취소보다는 연기를 택했다는 것이다.

올림픽 탄생 이후 대회가 취소된 적은 있어도 연기된 적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와 관련된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장 현실의 벽에 막혀 연기된 대회가 내년이 된다고 정상적으로 치러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앞선다. 과거 취소된 대회들도 따지고 보면 연기를 거듭하다 무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도쿄에서 올림픽이 ‘완전히 정상적으로’ 치러지는 것은 무산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우선 각 종목별 세계대회와 같은 스포츠 이벤트를 조정하는 문제가 쉽지 않다. 사실 올림픽에서 비중이 큰 육상이나 수영 등 일부 종목의 선수들은 올림픽보다 세계선수권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을 더 큰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년에 치러질 이들 종목의 일정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축구, 야구, 농구 등 프로가 활성화돼 있는 종목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명예보다 돈을 앞세우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의 매력이 떨어진다.

IOC가 도쿄올림픽을 내년 7~8월 개최하기 위해 국제육상경기연맹 등과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올림픽의 해를 피해 내년에 열기로 예정된 다른 종목들의 일정을 모두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상컨대 내년에 도쿄 올림픽이 치러지더라도 극히 한정된 일부 종목만 치러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일본의 한 매체가 도쿄 올림픽이 연기됐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뽑았다는 "희망이 사라졌다"는 헤드라인이 낭만주의가 사라진 21세기의 올림픽을 대변해준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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