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허투. 사진/다이이찌산쿄
엔허투. 사진/다이이찌산쿄

국내 유방암 환자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렸던 항암제 '엔허투'가 급여 등재의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 4월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 연간 8300만원 이상에 달했던 약값은 이제 417만원대로 낮아진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승인 후 약 2년 만의 성과다. 

29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위암 치료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껀정심) 평가를 최종 통과했다. 

복지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인 중증질환 치료제의 보장성 강화와 필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지원하기 위해 오는 4월 1일부터 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신약 목록을 지난 28일 발표했다. 여기에 엔허투가 포함된 것이다. 

엔허투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에 대해 탁월한 효과를 입증한 바 있다. 복지부는 엔허투의 보험급여 등재를 통해 중증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은 '이전에 치료 경험이 있는 암세포 특정인자(HER2) 발현 양성인 전이성 유방암과 위암'이다. 유방암은 투여 단계 기준 2차 이상·위암은 투여 단계 기준 3차 이상일 때 적용된다.

기존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1인당 연간 투약비용은 약 8300만원에 달했다. 3주 간격으로 한 번씩 맞아야 하는 엔허투의 특성상 환자 부담이 매우 컸다. 이번에 급여가 적용되면서 상한가가 143만1000원으로 낮아져 연간 투약비용은 417만원으로 급감했다. 

유방암은 여성에게서 발병하는 암 중 가장 비율이 높고 국내 40~50대 사망원인 1위로 지목된다. 특히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은 유방암 중에서도 예후가 좋지 않고 암의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다. 

통상적으로 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HER2 양성 유방암 ▲삼중 음성 유방암 등으로 분류되며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이 약 70% 가량을 차지한다. 엔허투가 표적하는 HER2 양성 유방암의 경우 4기를 기준으로 하면 생존기간이 4~5년 정도다. 

한국유방암협회에 따르면 전체 유방암의 약 20%를 차지하는 HER2 양성 유방암은 재발·전이 비율이 높고 질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 예후가 더욱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의 1차 치료로는 ▲퍼투주맙 ▲트라스투주맙 ▲도세탁셀 등 3개 약제 병용요법이 권장된다.

2차 치료로는 캐싸일라(성분명 트라스투주맙엠탄신·T-DM1)가 주로 쓰이며 이외에 라파티닙·카페시타빈 병용요법도 사용 가능하다. 다만 T-DM1 요법이 실패할 경우 나머지 치료 옵션이 반응률이나 생존 기간을 효과적으로 개선하지 못해 3차 이상의 표준 치료법은 부재한 상황이었다. 

엔허투는 대표적인 항체·약물접합체(ADC) 치료제로 암세포 표면의 특정 표적항원에 결합하는 항체와 독성을 지닌 페이로드(약물)을 링커로 연결한 구조다. 독성이 강한 약물을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치료 효과가 높고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 

한국유방암협회 자료에 따르면 엔허투는 앞서 T-DM1으로 치료받은 절제 불가능하거나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 184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에서 60.9%의 객관적 반응률(ORR)과 16.4개월의 무진행 생존기간(mPFS)을 보였다.

또한 임상 3상에서 T-DM1와 엔허투를 직접 비교한 결과 엔허투는 mPFS를 T-DM1의 6.8개월 대비 28.8개월로 연장했다. 이는 암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28.8개월을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다. 12개월 시점의 무진행생존율(12-Mo PFS)은 T-DM1 34.1%와 엔허투 75.8%로 나타났다. 

엔허투는 이런 독보적인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3차 이상의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의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국내 환자들이 엔허투로 치료를 받기까지는 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복지부는 엔허투의 혁신성을 인정해 급여평가와 약가협상 등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엔허투의 보험급여 등재는 한 차례 실패한 끝에 관문을 넘은 것이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유총회)가 국내 유방암 환자 1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유방암 치료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3.6%가 유방암 신약의 접근성 향상이 가장 절실하다고 답했다. 또한 95%는 혁신 신약이라면 본인부담금 5% 이상도 부담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유총회는 엔허투의 보험급여 등재와 관련해 대국민 청원을 진행하는 등 빠른 도입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앞서 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한유총회가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한유총회 설문조사에 참여한 유방암 환자들은 생존기간을 2~3배 이상 개선한 혁신 신약이라면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5% 이상 지불할 수 있는지에 대해 94.5%(104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80%(88명)는 혁신 신약이라면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10% 가량 추가로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했다.

곽점순 한유총회 회장은 당시 "유방암 환자들은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비율을 높여서라도 신약을 사용하고 싶다는 환자가 95%에 달할 정도"라며 "말기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을 위해 혁신 신약에 대한 조속한 보험 적용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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