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KPI 개선작업 착수…하나은행도 고객수익률 비중↑
금융노조 설문조사 "은행원 87%, KPI 유리한 상품 판적 있어"
실적우선 평가구조 개선 없으면 '제2,3의 DLF' 재현될 수도

▲ 은행권을 덮친 '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계기로 주요 시중은행들이 업무성과 평가 지표인 KPI(핵심성과지표) 손질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성과 위주의 낡은 영업관행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사진=pixabay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은행원의 업무성과 평가 지표인 KPI(핵심성과지표) 손질작업에 착수했다. 최근 은행권을 덮친 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실적우선주의' '직원간 과당경쟁'이 거론되면서 기존 상품판매 수수료 수입 중심에서 고객수익률 비중 확대 등 소비자 중심으로 성과평가 방식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은행 내부에서도 불완전판매를 부추기는 단기성과 위주의 KPI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직원평가 시스템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내년 상반기에 적용되는 KPI를 대폭 개선하기로 했다. 현재 상품판매 인력을 대상으로 한 KPI에 고객관리 지표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장 상황에 맞게 고객의 포트폴리오를 적절하게 관리하는지 등을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금융상품의 리스크관리 시스템도 강화한다. 우리은행은 외부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상품선정위원회에서 상품 심의 때 투자 상품의 적정성, 시장 상황 등에 대한 의견을 구할 방침이다. 아울러 자산군별로 리스크 정도를 따져 사전판매 한도를 설정·운영하기로 했다.

KEB하나은행도 올 하반기부터 적용되는 KPI에 고객수익률 비중을 현행 5%에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대상은 고객 자산가를 주로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 320명이다. 하나은행은 또 현재 판매 중이거나 승인 사모 방식의 상품에 분기별 점검 절차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KPI 개편 움직임은 최근 대규모 원금손실 가능성이 커진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 사태에 따른 후속조치다. 업계에선 고객이 손실여부에 상관없이 금융상품을 많이 팔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은행의 평가구조를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F는 10년물 독일 국채금리나 영국·미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와 연계된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한 사모펀드들이다. 금리가 일정 구간에 머무르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지만, 금리가 미리 정해둔 구간을 벗어나 하락하면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은행들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표)로 직원 성과를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는데, 직원들 사이에서도 단기성과 위주의 KPI 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게 사실이다. 

앞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14개 은행 직원 3만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7%가 고객의 이익보다는 은행의 KPI 실적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적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사례(복수 선택)의 경우 '고객 의사와 무관하게 은행 전략상품 위주로 판매했다'는 답변은 65%, '고객 의사와 무관하게 KPI 점수가 높은 상품을 추천했다'는 답변은 59%에 달했다. 또한 상품의 리스크보다는 장점 위주로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한 경우도 32%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고객 이익보다 실적평가를 기준으로 상품을 판매한 이유에 대해 '과도하게 부여된 목표(66%)'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은행 수익을 우선시하는 평가제도(56%)', '단기실적 위주의 평가제도(54%)', '캠페인·프로모션·이벤트 등 추가목표 부여(50%)'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은행들이 100여 개에 달하는 KPI를 만들어 은행원에게 실적경쟁을 시키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과도경쟁으로 발생하는 불완전판매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실적 위주로 평가하는 KPI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은행권 KPI 제도 개선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약 1조원어치 팔린 금리연계 DLF의 대규모 원금손실과 관련해 전방위 조사에 돌입한 금융당국이 연일 엄정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강경 기류를 보이고 있는 데다 은행 안팎에서도 실적 위주의 낡은 영업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경쟁하듯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은행들이 외형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현장에서 과당경쟁을 하거나 불건전한 영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KPI 폐지는 현실성이 없지만, 단기실적을 부추기는 평가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제2,3의 DLF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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