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로 디플레이션 탈출 못해…직접적인 유동성 공급해야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연 1.5%이던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내렸다. 한은은 2017년 11월과 지난해 11월 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올렸다가 올해 7월 0.25% 포인트 내렸다. 이날 추가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2016년 6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한은이 금융안정을 목적으로 금리를 올린 지 2년 만에 역대 최저 금리 수준으로 되돌아 간 것은 그만큼 경기 국내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16일 회의 후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앞으로 국내 경제는 미·중 무역 분쟁 지속,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지난 7월의 성장 전망 경로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금리 인하가 한은의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가 더 나빠지고 있다는 배경 설명이다.

이번 금리 인하는 시장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만큼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금리에 민감한 증시도 당일 소폭 상승(+0.71%)하는데 그쳤다. 증시가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향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장의 관심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한은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16일 금통위 회의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여력이 남아있다”면서 추가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내년 1분기 인하론이 힘을 받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기준금리가 1%대 밑으로 떨어지는 ‘제로 금리’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금리 인하를 통한 금융정책으로 침제의 늪에 빠져든 경기를 활성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디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금리 인하 효과보다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지거나 가계 부채가 더 늘어나는 등 금리 인하 부작용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적 통화정책(금리 인하)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기업의 생산과 투자, 가계소비로 제대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면 금리 인하의 효과는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기준금리 인하의 거시적 실효성 점검’ 보고서는 기준금리의 추가적인 인하가 경기활성화와 물가안정을 목표로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유동성이 넘쳐 금리 파급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또한 강도 높게 지속되어 온 부동산시장 안정화 정책으로 인해 금리 인하에 따른 자산효과도 미미해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진작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우리 경제의 당면한 문제는 국내 경기침체와 더불어 미·중 무역 전쟁과 한·일 경제 갈등으로 인한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 인하라는 통화 정책을 계속해서 내놓게 된다면 투자와 소비 진작은커녕 자칫 부동산 투기로 자금이 대거 몰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또한 이제 겨우 진정 국면에 접어든 15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금리의 추가 인하를 논하는 등 간접적 방식의 통화정책으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처방전은 통화정책과 함께 직접적인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재정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정부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9.3% 늘어난 513조5000억원의 슈퍼예산을 편성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예산의 약 50%에 해당하는 254조1000억원이 소득재분배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 사업 등 보건·복지·노동 및 교육 분야에 몰려있어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활성화 시키는 재정정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지난 9월 방한 당시 확장적 재정정책을 한국의 디플레이션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단기부양책’을 권고한 바 있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 들면서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조건은 충족되었다. 이제부터는 정부의 몫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공조를 통해 시중에 풀린 자금이 기업과 가계로 흘러 들어가도록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경기의 하방 리스크에서 탈출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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